개혁인가, 개안인가? 노동시간 개편 찬반 논란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시작합니다! 이번 주 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시행 4년이 된 주 52시간 근무제를 조정하는 새로운 노동정책의 밑그림이 최근 발표됐습니다.
주 단위로 제한되는 연장 근무를 더 유연화하는 게 핵심입니다. 다양한 시장 상황과 노동 과정의 특수성을 감안해 필요하다는 분석과 함께, 근무시간이 더 늘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유연화 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지,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재동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주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으로…개편안 윤곽 / 이재동 기자]
경기도 안양에 있는 김밥집입니다.
주 52시간 근무의 예외가 허용되는 서른명 미만 영세 사업장이라 지금 1명당 하루 10시간씩 주 60시간 일을 합니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에 8시간 추가 근무 허용 예외조항 시한이 끝나면 6명인 직원을 더 늘려야 하는데 인건비도 부담이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람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겁니다.
“사람 구하는데 짧게 짧게 구하기는 커피점이랑 식당은 다르다 보니까 애로점이 있어요. 구인 광고를 낼 때 기본적으로 20만~30만원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구하질 못하고 있어요.”
주문이 많은 계절에 근로시간을 늘리고 그 외에는 줄이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란 게 김밥집 사장님 생각입니다.
정부의 고민은 바로 이런 곳에 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4년 동안 실시해 봤더니,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새로 직원 뽑는 것도 부담이고 일감이 갑자기 늘거나 줄 때 대응도 어려웠단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현행 1주일인 연장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노사 합의로 월이나 분기, 나아가 반기나 연 단위까지 넓히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한 주에 소정근로 시간이 40시간, 연장근로 시간이 12시간입니다.
이를 월 단위로 넓히면 연장근로시간은 한 달에 52시간이 됩니다.
근로기준법상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이 있어야 하고,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권고한 만큼 하루 최대 근로 시간은 11.5시간.
이렇게 되면 1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이 안을 제안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위촉한 대학 교수 12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 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로, 내년 경제정책방향에도 개편 방침은 이미 포함됐습니다.
“노동 개혁을 위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신속히 마련하고,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노동자 동의를 얻어 일요일까지 일을 시키면 주 80.5시간 노동까지 가능하다며 일찌감치 반대 깃발을 들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권고안을 토대로 조만간 구체적 방안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연합뉴스TV 이재동입니다.
[이광빈 기자]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52시간제 개편 권고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립니다.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개혁’이라지만,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는 ‘개악’이라고 반발합니다. 몇주 몰아서 일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이후 얼마나 휴가를 쓰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담보할 수 있느냐도 핵심사안인데요.
정반대인 양쪽 목소리를 장효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개혁인가 개악인가…노동시간 개편 ‘갑론을박’ / 장효인 기자]
달라진 노동 환경에 맞춰 근로시간을 더하고 뺄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져야 한다,,주 52시간제 개편을 지지하는 기업들의 생각입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근로자는 근로자의 필요에 따라서 각자의 수요에 맞게…암묵적으로 법을 어기면서 해왔던 부분들이 이제는 제도권 내에 들어와서 투명하게…”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릴 경우.유연한 근로시간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도 풀리고 있고 특히 반도체 문제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단기간에 생산 물량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 52시간을 지키다 보면 그 물량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추가 수입을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희소식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주 52시간제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2018년을 기점으로 부업 참가율이 올랐다는 게 근거입니다.
하지만 노동계는 반발합니다. 특정 기간의 과로로 건강을 잃는 노동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람의 신체를 기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죠. 노동자의 건강, 생명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기업의 여건에 따라서 노동 시간을 결정하는…”
고용노동부 고시에도 뇌혈관질환 등의 발병 전 12주간 주 60시간 넘게 일하거나, 4주간 64시간 넘게 일했다면,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이 높다고 돼있습니다.
보호 장치가 부족한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늘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 3개월 동안 집중 노동을 했어요. 그런데 재계약이 안돼요. 필요할 때 사람을 쓰고, 수요가 끝나면 내쳐 버리게 되면 이것은 고용의 안정이 아니라 고용이 더 불안해지게 되는…”
노사가 합의해야 연장근로가 가능해 문제없다는 주장과 노조 조직률이 14%대인데 제 목소리를 내는 곳이 얼마나 있겠냐는 주장도 대립합니다.
“연장 근로는 근로자의 동의를 전제로 합니다. 사용자가 강제로 일을 시킬 것이라고 하는데 기우에 불과한…”
“노동조합이 없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근로자대표라는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합니다.”
정치권의 대립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라는 정부·여당과 “국민의 삶을 30년 전으로 후퇴시킬 것”이란 야당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신속히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의 반발에 더해 여야 지형까지 고려하면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연합뉴스TV 장효인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한국 노동시간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953년 당시 근로기준법으로 설정된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주 6일제였습니다. 주 48시간을 일하는 것이었는데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였습니다. 당시 노사 관계에서 노동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루던 경제 성장기에는 연장 근무는 일상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 안전에 대한 의식도 올라갔습니다.
2000년에는 주 40시간, 주5일제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논의는 3년간 이뤘습니다. 재계와 노동계의 갈등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른 끝에 주5일제가 도입됐습니다.
2003년 7월에는 금속산별에서 ‘임금 삭감 없는 주5일제’ 노사 합의가 잇따라 이뤄졌습니다.
결국 주5일제 법안은 2003년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 노동계, 여야는 벼량 끝 대치를 이어간 끝에 합의를 이뤘습니다.
다만, 급격한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7년여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가 늘어났습니다.
2004년 금융.공공 부문과 1천명 이상 사업체부터 시점적으로 주5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학교 등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어 가는 등 2010년대 초까지 사회 전체적으로 주5일제가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살인적이던 한국의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사회 풍속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삶의 질과 패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산업적으로도 레저 분야가 급성장했습니다.
2018년 2월에는 주당 근무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드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실시돼 2021년에는 중소기업으로 확대됐습니다.
노동시간과 관련한 해외의 추세를 살펴보겠습니다. 주4일제 근무, 즉 일주일에 32시간만 일하는 국가들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증감 문제를 놓고도 많은 논쟁이 벌어져왔는데요.
김지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개혁인가 개악인가…노동시간 개편 ‘갑론을박’ / 장효인 기자]
국제 비영리단체 ‘포데이 위크 글로벌’은 지난 6개월간 북미와 아일랜드 지역 기업 70곳과 함께 봉급 삭감없는 ‘주4일 근무제’를 실험했습니다.
근무시간은 20% 줄이면서 생산성은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과는 회사와 직원 모두 대만족.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고, 업체들은 주당 노동시간 감축의 전반적 효과에 10점 만점에 9점을 줬습니다.
‘오래 일해야 돈을 더 번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대목입니다.
해외에서는 단순히 실험을 넘어 주 4일제 도입이 본격화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IT·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편화된 재택근무는 이같은 추세에 불을 당겼습니다.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지난해 500명 이상 사업장은 ‘주4일, 32시간 근무제’를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발의됐습니다.
“회사도 그렇고 저도 마찬가지로 생산성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사흘은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쉴 수 있기 때문에 월요일에 보다 활기차게 출근해서 일을 끝내는게 가능하죠.”
“주5일 근무를 주4일로 줄이는 것이 중심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없앨 수 있는지, 즉 ‘다르게 일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벨기에의 경우, 유럽연합 국가 중 최초로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법제화해 11월부터 시행 중입니다.
이슬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는 올해 1월부터 공무원을 대상으로 금요일 오후부터 쉬는 ‘주 4.5일제’를 채택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915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가운데 5위로, OECD 평균보다 199시간 많았습니다.
연합뉴스 김지선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노동시간은 입법을 통해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정부 측, 경영자 측, 노동자 측, 여야 정당이 각각의 입장을 맞춰봐야 합니다.
이전 사례들을 봐도 갈등은 필연입니다. 아물지 않는 상처만 남긴 채 평행선을 달리느냐, 아니면 흉터를 남기지 않을 정도의 생채기만 난 채 사회적 합의점을 찾느냐. 한국 사회가 또 한번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는데요. 생산적 갈등, 어렵겠지만 기대해보겠습니다.
노동시간은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사회적 선택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경제 성장과 노동자의 권리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가 이뤄져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불가피한 진통 속에서 불완전하더라도 타협점을 찾아왔습니다. 사회적 선택은 개인들의 선택에 기반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노동시간 유연화 문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회를 원하십니까?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PD 김선호
AD 김다운
송고 이광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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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Source: 연합 최신